섭외 차 연락드렸을 때도 한창 촬영 중이라고 하셨는데,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혹시 어떤 작품 작업하고 계시는지 살짝 일러주실 수 있으신가요?
연락 주셨을 땐 아이유 양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에필로그’ 작업하고 있었고요. 지금은 곧 나올 손가인 양 솔로 활동 작업을 하고 있어요.
워낙 많은 작품의 연출을 하셔서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웃음) 먼저 최근에 발표된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뮤직비디오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금요일에 만나요’는 아이유 양의 자작곡이자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로 올해 활동했던 앨범의 에필로그 형식으로 나온 스페셜 앨범에 수록된 곡이에요. 어떻게 하는 게 재미있을까 생각하다가 곡에 맞게 가볍고 본인의 색깔이 묻어나올 수 있는 ‘원신원컷(One Scene One Cut)’기법으로 촬영했어요. 또 본인이 일 년 전에 앨범 준비할 때 본인 자작곡이 나오면 그렇게 찍어달라고 했었거든요. (웃음) 사실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발표 전에 티져 영상을 많이 찍었었는데, 그 티져 중 하나는 서울에 한옥이 있는 곳에서 찍었으면 했는데 사실 그렇게 못했어요. 그 아쉬움을 이번 ‘금요일에 만나요’를 통해 풀었네요.
‘금요일에 만나요’ 가사가 시작하는 커플의 달달한 내용인 것에 반해 뮤직비디오는 삼각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게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뮤직비디오도 사랑이 시작되는 내용으로 펼쳐지는 것보다 한 번 더 뒤틀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분홍신’ 뮤직비디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장기용이라는 친구와 아이유가 현재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죠. 거기에 듀엣을 했던 장이정 군은 일방적으로 아이유를 혼자 좋아하는 삼각관계 구도로 그려봤어요.
인터뷰 전에 ‘금요일에 만나요’ 뮤직비디오 메이킹 영상을 보고 왔어요. 아이유 양이 곡부터 연출까지 적극적으로 의견도 내던데 실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항상 아이유 양의 의견이 좋고 많아요. (웃음) 저도 그 영상을 봤는데 이정 군한테 연기 지도를 하는 장면이 나올 거예요. 한 번에 오케이가 나야 하는데 실수가 날까 봐 더 챙겨준 것 같아요. NG나면 큰일 난다고요. (웃음) 또 워낙 전체 톤을 맞춰 놓으면 중간중간 자기 아이디어를 잘 넣어서 의견을 내고, 표현도 잘해요. 아무래도 자작곡이다 보니 더 잘하려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요.
장이정 군과 장기용 씨에게 감독님이 연기 디렉션을 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용 씨와 아이유 양의 신(Scene)은 특별하게 연기하는 것보다 리얼했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했어요. 카페 안에서 다정하게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매 테이크마다 했던 액션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거든요. 매 테이크마다 정말 다르게 연기했어요. 실제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이 할법한 행동과 감정을 가져가도록 했죠. 반면에 이정 군은 둘과 다른 톤이었어요. 히스토리의 이번 곡인 ‘난 너한테 뭐야’ 그 감정으로 하라고 했던 것 같아요. 결국 상황이 ‘난 너한테 뭐야’잖아요. (웃음) 그리고 아이유 양과 남매처럼 편안한 관계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었어요. 실제로 한 회사 식구이기도 하고 동갑내기이기도 하거든요.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 ‘아장커플’이라는 애칭이 생길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펼쳤던 기용 씨의 활약이 대단했어요. ‘분홍신’에 이어 연이어 두 작품에 출연했네요.
기용 씨가 그동안 스틸 촬영만 하다가 ‘분홍신’때 처음 영상 매체로 연기했다고 해요. ‘분홍신’에서의 연기도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질감도 오묘한 분위기가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유 양과의 케미스트리(Chemistry)도 좋은 것 같고요. 제작 비화가 있다면 ‘금요일에 만나요’에 둘의 키스신이 있었잖아요. 사실 ‘분홍신’때도 키스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땐 서로 기억하고 담아두려고 하는 감정이라서 굳이 키스할 필요가 없는 분위기라, 수정이 되었죠. 그게 좀 아쉬우니까 (웃음) 이번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키스신을 넣어봤어요.
늘 감독님의 작품은 디테일한 소품이 인상적인데 이번에도 역시 테이프로 만든 피아노 건반, 길거리의 악사 등을 곳곳에 세팅하셨더군요.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는 판타지적인 컬러가 있다 보니까 다른 가수의 뮤직비디오보다 항상 소품이 많아요. 공간이나 분위기 자체가 소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공간감을 구성하는 편인데, 이번엔 최대한 배제하는 게 콘셉트였어요. ‘물나무 프로젝트’라는 곳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1층은 다방, 사진관이고 2층이 작업하는 곳이었어요. 모던하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이 좋아서 장소 자체에는 최대한 손을 대지 않았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정 군이 치는 건반은 노래 자체가 말랑말랑하니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세팅해봤고요. 그 외에는 정말 길거리 밴드밖에 없네요? (웃음) 한겨울이지만 마치 하와이에서 온 악사 혹은 밴드의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밴드 멤버로 써니힐(SunnyHill)의 장현 군, 윤현상 군, 그리고 아이유의 매니저가 특별 출연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촬영 날 마침 눈이 정말 많이 왔었어요. 촬영장에 갔더니 가게 앞에 눈사람 두 개를 만들어 놓으셨더라고요. 그것도 그대로 사용했어요. 눈 덕분에 분위기가 더 예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리패키지 전 앨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분홍신 뮤직비디오도 연출하셨는데요. 예전 브라운 아이즈 걸스(Brown Eyed Girls, 이하 브아걸)의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뮤직비디오 제작 전 녹음 과정부터 함께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번에도 녹음 과정부터 함께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유 양이나 브아걸 같은 경우는 그렇죠. 조영철 프로듀서님이 프로듀싱을 할 때 작사, 작곡진, 그리고 제가 한 팀으로 함께 기획해요. 어떤 콘셉트와 어떤 음악으로 활동할지 초기 단계부터 의견을 서로 나누죠. 물론 이번 ‘분홍신’도 그랬고요.
녹음 당시 처음 들었던 ‘분홍신’의 느낌은 어떠셨는지?
좋았어요. 저 또한 많이 기대했었거든요. 아이유 양이 기존 이미지에서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가가 프로듀서뿐 아니라 본인에게 큰 숙제였을 텐데. 그렇다고 섹시한 콘셉트의 여가수는 아닐 거고요. 아이유 양의 기존 매력도 지키면서 변화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이루고 있는 곡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재즈를 베이스로 한 곡이 주를 이루는 앨범이라, 아이유와 컬러가 잘 맞을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는데 아이유식으로 잘 해석했더라고요.
뮤직비디오를 구성하는 방법이 곡에 따라 전체 분위기에 맞게 뮤직비디오를 구성하거나 한 소절이 콘셉트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분홍신’의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발전시키고자 하셨나요?
음,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너무 많은 걸해서…. (웃음) ‘분홍신’ 이전에 티져 영상이 꽤 많이 나갔었잖아요. 그 이유는 오히려 티져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분홍신’에선 기존 익숙한 모습이 반영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아이유가 가수로서는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기존 모습을 가지고 가야 보는 사람들도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했죠. 사실 이번엔 그동안 했던 ‘판타지’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또 판타지를 하게 됐네요. (웃음) 하지만 그동안은 마냥 동화다웠다면 이번엔 어른을 위한 판타지로 기획했어요. 아주 예쁜 이야기만은 아닌 느낌. 잔혹 동화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너랑 나’ ‘좋은날’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모두 아이유 혼자 떨어져 고립된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판타지 안에서라도 세상에 발을 내딛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어요. 그리고 가장 큰 콘셉트는 이거였어요. 자유로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 이미지 적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굴레가 있고 쉽게 탈피할 순 없겠지만, 아이유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그래서 집시들이 필요했고요.
‘분홍신’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엄청나더라고요. 그동안 많은 분이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에 대해 차근히 여쭤보겠습니다. (웃음) 먼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The Red Shoes)’의 모티브를 뮤직비디오에 얼마나 차용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빨간 구두’이냐, ‘분홍신’이냐. 네이밍부터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한데요. (웃음) 처음 안데르센의 동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될 땐 ‘분홍신’으로 번역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긴 딜레마지만, 그건 저희가 처음 기획을 하면서부터 분리를 시켰어요. 일단 원작의 이름은 ‘빨간 구두’지만 ‘분홍신’의 어감이 더 좋아서 곡의 이름을 ‘분홍신’으로 결정했어요.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뮤직비디오 안의 두 구두의 의미를 말씀드리자면 ‘빨간 구두’는 아이유가 쇼 비즈니스를 하는 틀 안에서 본인이 해야 하는 숙명,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낼 수 없는 운명이에요. 아이유가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에서 ‘빨간 구두’를 신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중간에 기용 씨가 아이유에게 ‘분홍신’을 신겨주는데, 그건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랑, 로맨스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 후반부에서 결국 ‘빨간 구두’가 다시 신겨지죠. 어쩔 수 없이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춰야만 하는 가수로서의 숙명인 거예요. 다시 ‘빨간 구두’가 신겨지는 원작의 모티브는 좀 다른 방법으로 그대로 가져왔다고 봐야 하겠죠.
그렇군요. 뮤직비디오 첫 장면에서 기용 씨가 필름을 편집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단지 시대적 배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자가 아이유의 기억을 마음대로 바꾸려는 것이다.’ 등 의견이 분분했어요.
그런 부분은 의도적으로 열어두는 면이긴 해요. 사실 공간이 주는 느낌이 사실 시대를 표현하는 게 어느 정도는 맞고요. 하지만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는 과거. 이 남자가 화면 속의 아이유를 보고 있는데 그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건 맞아요. ‘분명히 이 사람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하는 정도로요. 기억을 새롭게 조각을 맞춰 나가고 있다고까지 의도를 한 건 아니었는데요, (웃음) 그런 뉘앙스 정도는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필름 속의 아이유와 장기용, 분명히 교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 테죠.
마지막 의문점입니다. (웃음) 궁극적으로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과거와 현재다, 현실과 상상이다. 해석이 대체로 다 맞아요. 모두 어려운 상징들은 아니거든요. (웃음) ‘분홍신’이라는 곡이 나오기 전에 재즈, 스윙이라는 장르의 곡을 만들 기획이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어요. 그때 뮤직비디오의 막연한 콘셉트도 ‘흑백 영화 속의 아이유’로 나와 있던 상태였죠. 흑백 영화 속의 아이유가 밖으로 나오는 세상이라는 기획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실제로 뮤직비디오 후반부로 갈수록 흑백 세상이 다시 다가오는데 그건 자신이 속해야만 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녀가 속해 있었으면 하는 세상. 그리고 컬러는 본인이 가고 싶은 세상을 분리하기 위한 장치였어요.
흑백화면과 컬러화면 대비의 정점이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뮤직비디오 중후반부, 아이유가 달려갈 때 ‘빨간 구두’가 옷장에서 일어나요. 그게 일어나면서 마지막을 향해 흑백화면이 점점 덮어오죠.
구두, 타자기, 날리는 깃털, 초반 영화 모니터에 나오는 영어 자막, 포스터 등 섬세한 소품 디테일 덕분에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그만큼 많은 해석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3분 몇십 초라는 곡 안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장면이 거의 반 이상인데, 나머지 드라마가 충분히 설명되어 질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요. 그래서 미술적인 장치라든지 소품이 들어가야만 하는 거죠. 그렇게 신경을 쓰면 많은 분이 읽어주시더라고요. 자연히 더 풍성한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요. 사실 ‘해석해주세요.’라는 의도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간혹 계시더라고요. (웃음)
뮤직비디오에서 유희열 씨의 활약 또한 대단했어요. (웃음)
아이유 양은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항상 힘들어해요. 언제 끝나느냐며 들어오자마자 시간을 보는 스타일인데요. (웃음) ‘타임 테이블’이라고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보는 일정표가 있어요. 보통 다들 눈여겨보지는 않는데, 그걸 가장 열심히 보는 사람이 아이유예요. ‘너랑 나’를 찍을 때 아이유가 대기시간에 잠들어 있는데 그걸 손에 쥐고 자고 있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이번 촬영 땐 그러지 않더라고요. 본인도 즐거웠나 봐요. 항상 혼자 외롭게 하다가 이번에 그 틈 안에서 같이 하니까 굉장히 풀어져서 웃기도 하고요. 유희열 씨가 집시 왕으로 나오셨는데, 오랜 시간 정말 열심히 해주셨어요. 아이유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촬영분에는 사운드가 안 들어가니까 비방용 멘트들도 던지시고요. 근데 저도 그렇게 혀를 내미실 줄은 몰랐어요. (웃음) 그리고 페퍼톤스(Pappertones) 분들도 굉장히 재밌으시더라고요. 저도 현장에서 처음 뵜었는데, 유희열 씨 못지않은 입담으로 촬영 내내 화기애애했었어요. 아이유 양이 웃음을 못 멈출 정도였죠. (웃음)
이야기만 들어도 현장이 눈에 그려지네요. (웃음) 특히 아이유의 뮤직비디오에는 워낙 많은 양의 소품이 사용되기 때문에 소품 준비 과정에서 웃지 못할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소품으로 항상 신경이 쓰이는 게 아이유의 뮤직비디오였죠. (웃음) 특히 ‘너랑 나’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굉장히 많은 시계가 필요했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건데, 시계 관련된 소품만 관리하는 팀이 있더군요. 시계 외에도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타임머신도 어렵게 제작했어요. 크기도 어마어마하지만, 실제로 돌아갔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특히 그 작품을 촬영할 때 타임머신 미술 팀, 세트 팀, 시계 팀. 이런 식으로 많은 팀이 붙어서 했어요. 뮤직비디오 촬영 후에 타임머신이 로엔 사무실 앞마당에 잠시 버려져 있다가 몇 번이고 재활용이 되었어요. 일본 ‘너랑 나’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한 번, 방송 컴백 무대 때 한 번, 마지막으로 아이유의 앵콜 콘서트 때 포토 부스로요. 그 날 이후 톱니가 다 떨어지면서 수명을 다했죠. (웃음)
현재 아이유, 히스토리를 비롯해 주로 로엔 아티스트와 작업을 해오고 계시는데, 그들과의 첫 인연점도 궁금해지네요.
처음은 브아걸이었어요. 그들을 처음 만난 게 ‘아브라카다브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 사실 ‘Hold a Line’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찍었었어요. 그때 인연이 되어서 ‘아브라카다브라’로 또 한 번 만나게 되었죠. 이후 조영철 프로듀서님이 로엔으로 옮기시면서 아이유 양도 만나게 되었고요.
주로 진중한 소재와 스토리를 다루셨는데 ‘금요일에 만나요’나 ‘낫띵스 오버(Nothing’s Over)’처럼 가볍고 밝은 뮤직비디오에 대한 연출 생각은 없으신 지도 궁금합니다.
좋아요. 캐주얼한 것 (웃음) 어느 정도 스스로 자아를 단단하게 가지고 있는 가수와 작업했을 때, 캐주얼하게 찍어도 그 안에 단단한 본 모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쇼 적인 장치나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수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는 그런 콘셉트가 적절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모든 걸 통괄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가만히 앉아서 노래만 부르는 가수의 모습을 찍는 게 바라는 중에 하나고요. (웃음) 제가 작업했던 작품이 주로 이민수 작곡가님의 곡이 많았었어요. 워낙 작곡가님의 곡이 악기들의 배치가 촘촘하게 되어 있어서 그를 표현하기 위해 기획도 촘촘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가볍고 캐주얼한 소재도 좋아합니다. (웃음)
혹시 감독님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셨나요? 감독님의 팬이 상당하던 걸요. (웃음)
아이유 양의 팬들, 히스토리의 팬들이에요. 제 팬이라기보다 제가 연출했던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웃음)
그런 반응이나 뮤직비디오 해석글을 보면 감독으로서도 굉장한 보람과 기분 좋은 자극이 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즐겁죠. 어차피 한 번 보고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는 재미를 가져가면서 다른 관점으로 계속 읽어 주시니까요. 가수가 소모되지 않고 다시 보고 하는 기능을 하고, 그러면서 또 노래도 여러 번 듣게 되어지고.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해요. (웃음)
자주 작업하는 로엔 아티스트 분들과도 가깝게 지내실 것 같아요.
네. 서로 바빠서 자주 얼굴 보는 건 힘들지만, 아이유 양이나 손가인 양을 비롯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들과 친하고 종종 연락하는 것 같아요.
그럼,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담긴 곡도 있나요?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사실 당연한 이야기거든요. ‘좋은 이별은 없다.'라는 말이요. 이 가사를 썼을 때가 아이유가 20살이었어요. 당시에 심각한 발라드의 감정이 20살 여자에게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다가 새삼스럽게 제 20살 때가 충격이었어요. 전에만 해도 이별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서로 미련이 있지만 헤어지는 거라고. 이런 환상이 있었거든요. 이별의 잔인한 진실을 증명했던 때가 20대 초반이 아닐까 싶어요.
최근 발매한 아이유 씨의 정규 3집 ‘MODERN TIMES’에 참여하셨는데, 최백호 선생님을 비롯해서 다양한 분들과 작업하셨더라고요. 공개되지 않은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작업 이야기가 궁금해요.
이번 앨범에는 사소한 에피소드가 있다기보다 큰 상상 속의 세계에서 놀다 나온 기분이에요. 처음 프로듀서가 방향성을 잡을 때 영감을 받았던 영화가 두 개가 있는데, ‘아티스트(The Artist)’랑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였어요. 그러다보니 앨범의 큰 툴을 2, 30년대 풍의 음악으로 잡게 됐던 것 같아요. ‘그 시대에서 예쁜 사랑도 했었고, 일도 했었던 사람이라면..’이라는 상상 속에서 뮤지션의 캐릭터를 잡았던 것 같아요.
이민수 작곡가님과는 ‘너랑 나’, ‘좋은 날'에 이어 이번 타이틀곡 ‘분홍신'도 함께 작업하셨어요. 이번 타이틀곡은 어떤 곡인가요? 간단한 소개 부탁할게요.
아무래도 저는 가사를 쓰는 입장이니까 제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곡이 나오기 전에 ‘분홍신'이라는 소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분홍신'이라는 테마가 굉장히 다각도로 이야기를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선 어감도 예쁘고, 분홍신 이야기가 동화 중에선 푸른 수염과 더불어 무서운 이야기인데, 엔딩을 떠나서 숙명, 운명, 욕망 등을 다루는 이야기잖아요. ‘사랑으로든 일적으로든 숙명이란 게 있을지언정, 나는 그걸 거스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라는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뮤직비디오에는 빨간 구두, 분홍 구두가 나오는데 각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어요. 해석은 보는 분들께 맡기고 싶네요. (웃음) 그리고 후렴구에 ‘썸머타임'이라는 단어는 발음적인 이유로 그 위치에 꼭 들어가야 된다고 지정했었던 단어였어요. 근데 그걸 계절감으로 풀기에는 발매가 가을인지라 ‘가장 따뜻하고 빛났었던 때'로 풀어서 쓰게 되었죠.
작가님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최근에 이민수 작곡가님과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거기에선 ‘아이야 나랑 걷자'를 꼽았었어요. 그 곡과 더불어 똑같이 애착이 가는 곡이 있는데,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요. 티저 이미지 때문에 동성애이야기인 걸로 추측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정확히 그런 건 아니고요. 제목 그대로 ‘누구나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게 결코 나쁜 게 아니다.’라는 내용이에요. 일단 이 곡은 데모 단계부터 곡이 너무 좋아서 엄청 들었어요. 사실 가사 쓰려는 곡은 많이 들으면 첫 느낌을 잃어서 최대한 안 들으려고 하거든요.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에 ‘을의 연애', ‘싫은 날', ‘기다려'라는 곡은 아이유 씨가 직접 작사하셨어요. 작가님이 바라 본 아이유 씨의 작사 실력은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을의 연애'의 가사는 정말 훌륭한 것 같아요. 기승전결도 뚜렷하고요. 인간이 가장 짜증나면서도 괴로울 때의 심리를 너무 정확하게 묘사했어요. 사실 단순히 묘사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건데, 여기에 멜로디의 리듬을 살려서 쓰는 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이유가 이번 곡에서 그걸 너무 잘했더라고요. 게다가 엔딩도 이 곡이 가진 정서처럼 속 시원한 게 마음에 들어요. ‘나는 이렇게 힘드니 돌아와줘..’가 아니라, ‘그래 내가 졌다. 에라이! 비겁한 남자야.’하고 끝내잖아요. 어쩜, 이리 기발할까요? (웃음)
작사가로서 대중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근에는 아이유 앨범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았어요. 사실 가까운 가수들과 작업할 땐 이런 게 가능해요. 수록곡이라고 생각하고 쓰기 때문에 주제가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거든요. 대중분들이 우리나라 노래는 맨날 사랑, 이별 노래냐고 하시는데, 타이틀로 의뢰받은 경우에는 작사가는 대중들의 공감을 사야 하는 입장이라 그 소재를 많이 다룰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에요. 대신 앨범 수록곡들을 들으신다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사랑, 이별 외의 가사를 듣고 싶은 분들의 취향도 충족시켜주고 작사가들도 더 자유롭게 가사를 쓸 수 있겠죠.
이민수 작곡가 같은 경우는 김이나 작사가와 함께. 아이유의 ‘좋은 날', ‘너랑 나'에 이어 최근 발매한 ‘분홍신'까지. 오랫동안 환상의 콤비를 보여주고 계세요. 이제는 세 분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좋으시겠어요.
그렇죠. 일단 인간적으로 너무나 신뢰하고, 친한 관계에요. 아시다시피 김이나 작사가는 제 와이프이고요. 이민수 작곡가도 내가네트워크 때부터 같이 했고, 그냥 술 친구에요. 근데 저를 빼놓고 두 분도 자주 모여서 수다를 떨더라고요. 자기들끼리는 저의 계약에서 노조를 결성했다면서요. (웃음)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곡비를 올려달라는 등. (웃음) 일적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신뢰하고, 호흡은 더할 나위 없죠.
의견이 안 맞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당연히 많죠. 이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작곡가가 원하는 방향, 비주얼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방향, 이런 것들이 사실은 큰 방향성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서로가 원하는 디테일들이 다르잖아요. 사실 이런 게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들인데, 신뢰가 있기 때문에 서로 작업할 수 있는 거죠. 실은 아이유의 ‘좋은 날' 같은 경우 가사 중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가사를 김이나 작사가가 너무 싫어했어요. 그거는 소녀시대의 전유물이라면서요. 어떻게 보면 가사에 ‘오빠'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작사가 입장에서는 남자들을 건드리는 전략적인 요소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이런 식으로 서로의 의견이 안 맞을 때도 있는데, 결국은 이 노래의 기본적인 정서나 느낌으로 봤을 때, 이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곡가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게 굉장히 많은 삼촌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가 되었죠. (웃음)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한 구절 때문에 아이유 씨에게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가 생기기도 했어요.
사실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은 위험한 영광이죠. 이미지는 그렇잖아요. 모든 게 완벽해야 하고, 예쁘고, 노래도 잘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대중들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가수가 인기와 부를 얻는 것 같기도 한데, 이런 것들을 가수 입장에서는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인 거죠. 사람이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은 일말의 허점인 거예요. 한 치의 잘못도 용서되지 않는 타이틀이기 때문에 오래갈 수도 없고요.
아이유 씨의 앨범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버스커 버스커의 정규 2집 앨범이 전 차트를 점령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아이유 씨의 앨범이 발매되면서 다시 역전했죠. 어쩌면 그동안 앨범도 그렇겠지만, 이번 앨범을 발매하면서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버스커 버스커 음원이 일주일 정도 먼저 나왔잖아요. 잘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버스커 버스커가 어마어마한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저나 아이유 본인도 긴장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경쟁이 아니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긴장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이 활동으로 따지면 2년 만에 나온 거라 부담감도 컸었죠. 다행히 결과가 좋았지만요. 아이유한테도 새벽에 문자를 하면서 ‘한시름 놨지?’라고 보내려 했는데, 너무 결과 보기가 부담됐나 봐요. 차마 못 보겠다면서 일찍 잤더라고요. 그 정도로 그 친구는 부담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이번 앨범에서는 최백호, 양희은 선생님, 샤이니의 종현 씨까지. 다양한 분들이 앨범에 참여하셨더라고요.
이번 음반에 참여한 최백호 선생님, 양희은 선생님 등, 이런 게 기획이나 전략인 것처럼 비쳤더라고요.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번 음반에서 제일 고민했던 건, 요새 음반 내면서 ‘이번 콘셉트는 뭐야?’라고들 많이 묻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저는 기획이나 전략이 가수를 맞추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마케터가 기사를 위해서 이번 콘셉트를 성숙이라고 쓴 것 같은데, 사실 콘셉트를 성숙으로 잡았기 때문에 그런 콘텐츠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아이유는 나이를 먹었고, 18살에서 21살이 되었잖아요. 얼마나 내면이 변했겠어요. 단순히 그 아이의 내면과 외면이 자연스럽게 성숙한 것들을 반영한 결과물인 거죠. 그러니 이번 콘셉트는 ‘성숙, 섹시'는 아닌 거죠.
아이유 씨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성숙해졌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작자의 입장에서 ‘아이유'는 어떤 뮤지션인가요?
글쎄요. 저는 진짜 뮤지션이 뭐냐라는 거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어요. 막연하게나마 결국은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가요계에서 자기 음반을 발표한다는 의미도 당연히 이유가 있어야 하죠. 뭔가를 원하고, 표현하고 싶을 테니까요. 이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유는 그런 표현 방식이나 자기 세계가 뚜렷이 있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본인이 쓴 곡들을 저한테 들려줬을 때, 다른 방향을 제시하면서 수정하라고 권유했더니, ‘이번에 그 방향은 제 정서가 아닌 것 같아요.’라고 거부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봤을 때, ‘이 친구가 자기 세계가 생기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제 의견을 거부했지만 저는 그걸 기특하게 봤어요. 앞으로도 자기 세계가 더 단단해지는 뮤지션으로 성장해가길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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